관성 - 윤이산
밤늦은 지하철
사내의 머리통이 자꾸 어깨 위로 떨어진다
꼭, 죄어 빳빳이 세워두었던 고개가
조립이 풀리는 모양이다
마음이 들어 있다는 머리통
그래서 가장 높은 곳에 얹혀있는 머리통
꼭대기에 앉아서도
발보다 더 많이 억눌린 머리통
생각이 너무 많아
늘 무거운 머리통
온종일 팽팽팽 굴리느라
뚜껑 열면 비명이 솟구쳐오를 것 같은 머리통
사소한 정보 하나라도 뺏기지 않으려고
두개골로 단단히 감싸고 있는 머리통
피로가 더께더께 깔고 앉아
소프트웨어가 뭉개진 머리통
한쪽으로 꺾이자 잡동사니 생각들이 우르르 쏠리고
포개지고 찌그러진 것들끼리 서열을 정하느라
엎치락뒤치락 골 빠개질 것 같은 머리통
정신 줄 놓지 말라고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번쩍 세우고 휘발된 의식을 그러잡아 보지만
이내 캄캄한 돌덩이가 되는 머리통
그래도 몇 번이고 넥타이 끈으로
자존을 동여맸을 머리통
내릴 때가 되자
툭 끊어져 바닥으로 구를 것 같던
머리통에서 공손한 얼굴을 꺼내 바꿔 달고
양어깨를 두어 번 흔들어 감각을 수평으로 조절한 뒤
자동문 앞에 우뚝,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