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 이기와
1772번 철새가 날아왔다
기별도 없이 수백 킬로를 쉬지 않고
허공에 박치기하며 날아왔다
아직 벼가 익지 않은 초가을인데 뜻밖이군요
내 생각보다 앞질러 출소한 철새와
중간 도래지인 내 집 잡풀 우거진 마당에 앉아
막김치에 막걸리 들이킨다
사구처럼 눈두덩이 붉게 부어오른 철새가
많은 양의 생각에 취해, 운다
그동안 사람이 무지 그리웠어요
이제 정신차리고 돈만 벌거예요
인간이라면 멸치똥처럼 발라내고 싶은,
돈이라면 사지를 찢어발기고 싶은, 내 앞에서, 운다
시들한 내 눈빛을 알타리무처럼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으며 굳은 의지의 칼을 갈더니
달포 만에 절도 9범 아니, 이제는 10범
2022번 새 번호를 달고 허공에 박치기하며
온 곳으로 다시 날아갔다
거참, 속 터지네
새장 문을 열어 줘도 날아가지 못하는
멍텅구리새,
백 개의 열쇠로도 자유의 금고 하나 털지 못하는
도둑 같지 않은 도둑
새 같지 않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