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절리역 - 문인수
기차는 이제 오지 않는다.
지금부터 막 녹슬기 시작한 철길 위에
귀 붙여 들어보니 저 커다란 골짜기,
커다랗게 식은 묵묵부답 속으로
계속 사라지는 꼬리가 있다
기나 긴 추억일지라도 결국
망각 속으로 다 들어가고 마는 것이냐
단풍 산악이 울컥, 울컥,
적막, 적막, 에워싸고 있다. 누구나
키가 길쭉해져서 쓸쓸한 곳
발 밑엔 토끼풀꽃 몇 자주색 뺨이 싸늘하다
가을이 깊으냐, 짐짓 한 번 묻고
떠나야 하리 무쇠 같은 사랑
구절리, 구절리역에다 방치해야 하리
풍장 놓인 노천에서 오래 삭으리라
침목을 베고 누운 검은 침묵,
뜨겁고 숨가쁜 날들은 뼈만 남아서
기차는 이제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