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워진다는 것 - 박연숙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스멀스멀 비 내리는 풍경이 이해될까요?
나는 차츰 나를 무서워하기 시작해요
이완을 되풀이하는
나의 바깥은 미끈미끈한 하늘을 마주하죠
등 뒤엔 한 떼의 날개,
이것은 더러운 것인가요?
음모처럼 치부를 읽어내는
미지근한 입속
지루한 천사처럼 환호를 보내요
물기 많은 손톱 밑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드러워서 적막한 몸을 보았거든요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날개들이 둘러앉는 식탁 같은 것들 말이에요
부푸는 잠 속으로
걸어와 나의 내부를 뒤적거리는
당신의 입술은 나를 좋아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스멀거리는 이 창문을 이해할까요?
* 윤동주 「별 헤는 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