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같이 잠깐 다녀간 저녁비의 이미지 - 조정권
밤이 파란 면도날 하나를 내게로 날린다.
누가 모차르트를 치고 있다.
비 내리는 뜨락으로 파묻히는 피아노,
저물녘 돌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바늘소리
접시 위에 떨구는 바늘소리
검은 튤립처럼 펼쳐진 악보,
등뒤에서 누가 모차르트를 동생 안아주듯 치고 있다.
하늘을 향해 검은 꽃송이를 봉인하듯
미모사나무 죽은 아랫도리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비.
눈물이 아직도 따뜻하다.
音들이 철조망의 거위들처럼 모가지를 늘어뜨린 채 거꾸로 매달려 있다.
거위들은 죽어서도 모가지를 껴안고 있다. 눈물이 체온처럼 남아 있다.
누가 오선지에 탐스런 포도송이들을 걸어놓고 있다.
미모사 꽃향기 환한 창가에서
밤이 면도날 하나를 내 귓가로 또 날린다.
내겐 구석의 슬픔이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