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 - 장석주
—주역시편․ 33
태풍 영향으로 구름은 동진하는데,
저곳에 사람이 있다.
저곳에 사람이 있다.
돌아서서 걷는 사이,
먹다 남은 사과에는 초파리 57마리,
그중 13마리가 공중으로 난다.
우유는 단백질 성분이 부패하고
소년과 소녀들의 세계는
금세 붕괴하리라.
오후 3시 27분 45초에서 오후 3시 27분 57초 사이.
서교동 대우미래사랑 건너편 파리바게트 앞,
소녀의 손에서 아이스크림의 일부가 녹고
네 손톱들은 자란다.
이태 전 열두 살이던 너는
이제 열네 살, 곧 하류인생으로
전락하기 좋은 계절.
바람이 네 스커트 자락을 부풀린다.
57초에서 59초 사이,
초파리 7마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상한 우유의 단백질이 엉기는 사이,
맥주에서 거품과 탄산이 휘발되는 사이,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초파리 327마리가 붕붕거린다.
경經을 먹는 당나귀들*이 온다.
2할5푼을 치는 타자들에게는 2할5푼의 인생,
3할7푼을 치는 타자에게는 3할7푼의 연봉.
타석에 한 번도 서지 못한
연습생 타자에게는 연습생의 인생이 있다.
이번 생에 약간의 불운이 있었고
그보다는 더 자주 행운이 따랐다.
빈 궤적을 그리며 도는 배트의 헛스윙들,
그 많은 실패들이 다정한 까닭이다.
서울의 한 반지하방에서
백골 시신 한 구가 나왔다.
시체는 3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망명자들이 숨기 좋은 반지하방들.
태풍의 영향으로 구름은 동진하고
저기에 있다.
저기에 걸어간다.
*‘經을 먹는 당나귀들’이라는 구절은 후지와라 신야가 쓴
『티베트 방랑』의 한 소제목 ‘經을 먹는 개들’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