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터마임, 이제는 막이 내렸다 - 최동호
장막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팬터마임, 관중을 침묵시킬 뿐
결코 말하지 않는다.
흰 가루로 분장한 너의 얼굴이
무대 밖으로 돌출하듯 튀어나와
말없이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부릅 뜬 너의 눈이 어둠속에 앉아 있는
우리를 전율케 한다. 소리나지 않은
광기의 목소리로
침묵의 벽을 향해 외친다.
곤두선 머리털이 빠진다.
네가 웃고 있다, 부드럽고 인자한 얼굴로.
관중이 복종을 거부할 때
네가 분노한다. 굳어진 얼굴을 가리는
철사 같은 손가락이 떨고 있다.
떨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이며 우리는 새로이 태어난 인간처럼
안도의 숨을 내쉰다.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를
붙잡아 우리는 살아난다.
너는 다시 웃고 있다.
놀라지 마라 우리는 하나이니라.
근심 걱정 없는 태평천하였으니
장막 뒤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팬터마임, 네 고독한 몸짓은 화약 연기와 같다.
막이 내리고 돌아나오는
극장 밖에는 찬연한 햇살이
어둠을 무찌르는 함성처럼 부서지고
마취된 정신의 빈틈을 울리던 소리가
성난 함성으로 되돌아와
하얀 얼굴의 악령에 홀려 있던
관중들의 외침이 밀물처럼 휩쓸고 나아갔다.
시대의 폭약이 터지고, 너는 쓰러졌다.
팬터마임, 이제는 막이 내렸다.
분장을 지워라.
분노를 터뜨리지 마라
흥분할 필요가 없다.
결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