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밤 볼펜으로 - 이승훈
흐린밤 볼펜으로
이제 무엇을 쓰랴
흐리게 흐리게 무엇을 쓰랴
무엇을 찾아 무엇을 찾아
쓰랴 서럽던 날들을
쓰랴 사라진 바다를
바다 위의 구름을
용서하랴 부서지랴
축복받은 날들은
모조리 아름답던 날들
이렇게 흐린 밤
목메이는 밤
무엇을 쓰랴
이 백치같은 외롬
마음껏 찢어지는 외롬
하염없는 날들만 하염없으니
영원히 저무는 병원 하나만
우주처럼 흔들리는 방에서
사랑했던 사람아
흐린밤 볼펜으로
이제 무엇을 쓰랴
떠날 수 없고
머물 수 없으니
바위같은 가슴이나 울리면서
이제 무엇을 쓰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