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에 관한 기억 - 이경림
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 그저 심심해서.......
앞머리 몇 가닥을 살짝 초록으로 물들이고 다닌 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 하도 적막해서.......
앞머리 몇 가닥을 포도색으로 물들이고 다닌 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빨간 머플러를 조용히 한쪽 어깨로 넘기고 모임의 맨 뒷자리에 앉아서
빙그레 웃으며 손만 슬쩍 들어 주던 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광화문 어느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무연히!
- 실크로드 탐사길에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묻던 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 땅 끝 마을에 가자........
싱겁게 웃던 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그렇게....... 몇 번, 말로만 함께 여행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그림자처럼 조용히 걷고, 웃고,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다
어느 날 문득 사라진 한 시인이........
있었다........ 치자.......
아아, 언제 그가 있기는 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