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의 거리 - 이문경
마네킹의 얼굴에서는 칼날의 냄새가 난다
눈 내리는 강남역 새벽 한 시
연등제에 걸어놓은 종이꽃처럼
개성 다른 옷차림의 마네킹들 흩어지기 시작한다
억제된 감정과 눈물을 어둠 속에 풀어놓고
아이라인 번진 눈가 마르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로 택시를 부르고
보도블록 틈에 빠진 하이힐 굽을 빼다가 눈물을 흘린다
그녀도 안다 하이힐 때문에 자신이 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울음에 다른 누군가의 울음이 그친다
지붕에 불을 켠 택시가 눈발을 헤치고 달려온다
이제는 덧난 상처에 흰 붕대를 각자 싸맬 차례다
집이 먼 순서대로 올라탄 사람을 싣고
이마까지 붉어진 얼굴로 택시는 사라져가고
마네킹은 쇼윈도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투명한 가격표를 목에 걸고 가장 자신 있는 포즈로
일요일 아침
지난밤의 구토와 욕설, 그리고 욕망으로 조금씩 휘어지던
평균 나이 25세의 거리는
불안과 불균형으로 조금씩 균형을 잡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