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 - 조동범
오늘은 축제의 밤이야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불행한 장미의 밤이지
붉은 장미를 바라보며
카니발의 행렬이 폭소를 터뜨리지
고깔모자를 쓴 광대는
신나는 나팔에 매달려
말랑하고 부드러운 리듬을 만들어내지
카니발의 밤은
깊고 아름다워
하늘을 가득 메운 색종이가
바람을 타고 허공을 맴도는,
그런 밤이야
카니발의 여인은 노래를 부르며
나팔 속으로 행진을 하고 있어
카니발의 큰북이
심장을 따라
붉은 리듬을 만들고 있어
오늘은 붉은 심장의 밤이지
벌거벗은 여자들은
광대들의 고깔모자를 빼앗아
공중에 던지지
흥겨운 공중은
빙글빙글 도는 고깔모자로 가득해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검은 왕관의 밤
여왕은 빛나는 지휘봉을 들고
최선을 다해 카니발을 지휘하지
나팔과 큰북이
검푸른 어둠을 서성이는 밤
카니발 너머에는
동굴처럼 길고 막막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지
어둠을 향하면서도
끊임없이 즐겁고 유쾌한
카니발의 행렬
여왕은 최선을 다해 웃고 있지
최선을 다해,
지휘봉을 돌리고 있지
고깔모자와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검은 왕관의
카니발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