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희망곡 - 김은경
턴테이블은 옛날에 고장 났는데
어떤 악보도 나는 없는데
이어지는 밤의 오페라는 누구의 것
너의 검지는 하필 퉁퉁 부어 있었고
서쪽으로 느리게 걷는 취미
걸어도 걸어도 채울 수 없는 허증
입병 든 고양이가 굶기 일쑤면서도
발정 나서 그토록 달아오른 것처럼
스무 살 엄마는 꼭 한번 가져본
꽃무늬 스커트를 홀라당 잃어먹고 종일을 울었다는데
목숨보다 중한 것들이
크레파스처럼 널려 있을 거야
네 귀의 악마는 속삭이고
축축한 옷감들이 숨 붙은 수족처럼 구는 시간을 틈타
세탁기가 멈춘다
그에게도 울음 멎을 핑계는 필요하니까,
묵은 쌀에 곰팡이를 들여다보다
저녁밥을 굶기로 한다
빙그르 빙그르르르
어제의 눈부심이 너덜너덜한 치맛자락이
사력을 다해 말라가는 동안
이미 너의 손가락을 잊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주먹에 쥐고 있던 것을
언제 놓아버렸지?
주인 없는 죽음이 문지방을 왔다갔다,
결별의 순간에도 음악은 가장 우아한 발작이다
밤의 오페라 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