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뿐인 얼룩 - 김박은경
붉은 얼룩은 어지럽죠 잃을 게 있는 여자애처럼
떨어지는 죽은 새들을 가슴으로 받아 안을 때
쿵 쿵 쿵 거대한 바퀴는 돌아가고
뭉크러진 마음을 화대처럼 받아 쥔 채 그립다 또 말할 때
환멸에 대해 치욕에 대해 기억해야 할 때
번지는 얼룩 자라는 얼룩 무거워지는 얼룩
하얗게 보이려면 하얗지 않은 게 있어야 하죠
세 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으며
진짜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혼자 있는 건 무섭죠 누군가 있는 건 더 무섭죠
세제를 듬뿍 넣은 세탁조
배수구로 쏟아지는 붉은 거품 물
읽다만 책장은 시커멓게 퍼덕대고
침대에 기대앉은 여자애는 죽은 새들의 깃털을 뽑죠
두 눈을 덮기 위해 그 몸을 덮기 위해 그 밤을 덮기 위해
그래도 얼룩은 불어나서 얼룩뿐인 얼룩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죠
밤은 온통 검정 아무것도 보이질 않죠
보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야 하는 시간
잠든 여자애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얼룩은
무겁고 깊고 어쩌면 따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