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들 - 김원경
죽은 자작나무에서 버섯이 자라는 걸 본 적이 있다
죽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손톱을 기르는 것처럼
육체가 조금씩 액체가 되고 수증기가 되고
말을 잃고 미세하게 돋아나는 불안을 얘기하자
나는 간신히 침묵이 떨어지는 순간을 본다
나의 이 불안이 누군가 죽음 이후에 심어 놓은
미세한 균사체가 아닐까 의심될 즈음
나는 자꾸만 투명한 내장을 꺼내서
최후의 수분까지 증발시키려는 순간과 악수한다
왜일까 왜 그래야만 할까를 생각할 때
이미 난 온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세수할 때마다 떨어뜨린 긴 속눈썹
파르르 떨고 있는 한 줄 현(絃) 위에서
발목을 잃은 무용수의 창백한 울음소리
때론 침묵이 너무 진지해
게바라의 별은 어느 날 전광판에서 더 빛나고 있다지만
바람 불지 않아도 바람개비는 계속 돌고 있다
점점이 떨어지는 눈처럼
서로 다른 속도로 흩날리며 다가와
읽혀지는 순간 머나먼 곳으로 사라지는 침묵들
침묵은 보호색을 가지고 있어
수천 개의 긴 문장을 투명한 액체로 쓰고 있다
나는 이 한 문장을 해독하는 데 한 생을 다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