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鎭魂曲 - 한석호
누가 입속에 바람의 사원 하나 세워 놓았던 것인가.
아, 하고 입을 벌리면
회오리바람이 몸속 어딘가를 캄캄하게 더듬어
물고기 떼 허공에 풀어 놓는다.
미명의 눈가를 흐르는 비릿하고 뜨거운
저 냄새들 물의 누이들,
합장하고 있는 올빼미의 둥근 침묵,
기이한 형상으로 얽힌 뼈와 뼈가 바위 그늘에서 별을 헨다.
눈꽃은 콧잔등에 돋는 별을 헤고
세상의 모든 사랑은 바람의 사원을 찾아 떠돈다.
아, 하고 입 벌리고
잠든 것들의 꿈속에서 뛰쳐나오는 오늘과 입 맞춘다.
바람이 잠을 껴안고 춤을 춘다.
검은 구름의 문장으로 달아난 발자국 소리 되돌아오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네가 썼던 검은 대리석의 글씨들이 일어선다.
칠흑의 울음 위에서
네 노래는 검은 대리석 같은 밤을 일으켜 세운다.
네 노래는 녹슨 음악의 분수를 지휘한다.
네 노래는 녹슨 불기둥을 지휘한다.
네 노래는 수세기동안 침묵했던 허기를 지휘한다.
네 노래는 수세기동안 휴식중인 모래시계의 권태를 지휘한다.
네 노래는 모든 지워진 사랑에 불 지핀다.
어제를 쓰다듬는 것은 버림받은 사냥개의 길고 지친 혀들
나는 가슴 한켠을 지긋이 내려놓고
초목과 꽃과 물과 불의 시간을 천천히 핥는다.
검은 대리석의 밤을 두드리면
아! 내 잠속 깊은 곳에 바람이 수혈의 링거를 꽂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