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스트 - 강기원
밀물의 밤
심야방송 끝난 TV 화면 속 지직거리는 물결무늬,
내 안의 썰물,
나는 생각한다
밤의 수족관 밑바닥에 죽은 듯 엎드린 물고기의 두통,
시체 안치실에서 불현듯 발기하는 음경,
아무리 곱씹어도 소화되지 않는 허무의 살덩이,
내 안에 쌍두사처럼 붙어 있는 밀실공포증과 광장공포증,
벙어리 책들이 와글거리는 서점의 고요와 소요,
사지가 잘린 채 태어난 태호, 태호의 말간 웃음,
죽은 배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그리고 또 나는 생각한다
턱이 잘린 아기 고양이 차차,
요요한 곡선에서 직선이 되어버린 금강의 어이없는 슬픔,
내, 네 얼굴 밑에 숨어 있는 수만의 얼굴들,
후안무치의 죄의식과 베토벤의 마지막 사중주곡 <울적한 기쁨>,
갓 몸 푼 산모가 들이켜고 피 묻은 아기를 씻겨야 하는 아프리카의 진흙탕물,
최고의 아이러니스트인 신(神),
그의 어긋난 날개를 생각한다
비대칭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장 안에 넣으면 색깔이 바뀐다는 파랑새에 대해
아, 저 물결무늬는
우주 탄생 대폭발의 잔재라지, 아마
* 에즈라 파운드 「휴 셀윈 모벌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