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죽은 새가 그대의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 김정웅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여름새의 뼈 위로
눈이 내린다, 아니다, 떠나지 못한 것은 새가 아니다
내내 여름인 고향이 새를 떠나고
구더기 떼처럼 들끓었던 타국의 여름이
새를 떠난 것이다, 살아서
평생 열을 앓았던 몸에서 하나의 계절이
떠나는 것을 본다 새의 텅 빈 두개골 속, 그
어둠을 모두 메워 버릴 듯 눈은 내리고
끝내 내 몸에 정착하지 못한 계절을 따라서
달아난 그 사람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동안
내가 주었던 것은 체온 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발목까지 쌓인 눈 속에서 발 없는 귀신이 된 것처럼
춥다, 얼어붙어도 흐르는 저 강처럼
자꾸 도망을 치던 그 여자를 끝내 건너지 못했다
유령이 되어서도 건너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흙탕물 일었던 그 여름의 강이
이 어둠 속에서, 눈발 속에서 다시
슬그머니 수위를 높인다, 이런 날에는
사람이 빠져 죽어도 세상은 눈치 채지 못한다
지난여름 내내 번성했던 추억들이
멸종하고 있다, 멸종된 동물들에 대한 도감(圖鑑)에서
이 장면을 본 것만 같아 슬프다, 내 생의
모든 페이지를 넘겨 버릴 듯 바람이 분다, 더 이상
채집할 추억은 없다는 듯, 그가 새의 두개골을 주머니에 넣고
발을 잃어버린 나를 이곳에 두고 간다
세상이 캄캄해진다, 이제는 그만
인생을 암전(暗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