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手話(수화) - 최승권
몇 몇은 보이지 않았다
졸업식 송사의 마지막 구절이
키 작은 여학생들을 일제히 흐느끼게 할 때
서울 어느 목공소 조수로 취직했다는 광오와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한 상동이의 얼굴은
금간 유리창 너머 갈매기 두 마리로 날아오르고
교정 구석 단풍나무 한 그루로 선
나는 노을이 지는 바다를 훔쳐보았다.
싸락눈 잘게 뿌리던 날
문뜰나루 건너온 그놈들이
조회시간에 불쑥 내민 김뭉치를 받았을 때
지방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정적인 시골 중학교 선생님이 된 나는
그놈들의 부르트고 째진 손등과
교실바닥에 나뒹굴던 해우무침 조각을 보고
바다를 따라 흔들리는 유채꽃의 희망과
황토밭을 흐르는 고구마 줄기의 자유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일까.
해우 한 장보다도 얇은 졸업장을 추면서
바닷가 갯물냄새 투성이의 아이들과
마지막 뜨거운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빈 칠판에 갈매기 두 마리를 그리고
유리창 밑에 숨어 바다를 보며 울었다.
서울의 낯선 어둠을 깎는 대패질소리와
절망마다 강하게 내리박는 못질소리가
짧은 편지 가득 들려오는데
앨범에 묻어두었던 흑백의 그리움이
문뜰나루 갈매기 울음소리에 섞여
옹암리 앞 푸른 바다로 출렁이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