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여자 - 김종미
오뉴월 땡볕에 붉은 털스웨터를 입고 거리로 나온 여자
‘그녀는 미쳤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그녀는 불탄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녀의 생은 발자국 하나하나 모두 사랑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생은 발자국 하나하나 모두 사랑의 끝이었을 것이다
바짝 마른 그녀의 몸뚱아리는 심지처럼 붉은 털스웨터 안에 꽂혀있다
오늘은 불타오르기 좋은 날
사랑하는 그 사람과 일 분 일 초도 안 쉬고
키스만 해야 한다면
사랑하는 그 사람과 일 분 일 초도 안 쉬고
섹스를 해야 한다면
그리고 죽을 수도 없다면
사랑이라는 지옥 속에서
사랑해라는 말을 남용한 혓바닥이 타오른다
타오르는 붉은 스웨터를 감고 타오르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
나는 내 몸의 서랍 속에 넣어 둔 오래되거나 새로 쓴 연서들을
여자에게 하나씩 던져버렸다
내 입 속의 차가운 혀도 던져버렸다
30년 만의 폭염이 만물을 흐물흐물하게 물고 빠는 거리
사람들이 일제히 흐느적거리며 제 몸의 서랍을 털어내는 거리
시계탑이 서서히 녹아 흘러내리는 거리, 그리고
불타는 여자, 재가 될 수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