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눈을 감았다 뜬다 - 황동규
산책길 나무 하나 트럭 타고 이사 가고
대신 조그만 나무 하나 심겨졌다.
몸속에 입력된 개화(開花) 프로그램 지워버린
진달래 철쭉 영산홍이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한꺼번에 피다 시들자
장미들이 봉오리를 열기 시작했다.
자주 보던 사람 하나 어느 샌가 사라지고
그가 늘 앉곤 하던 벤치에
오늘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빈자리는 늘 누군가 와서 다시 채운다.
벤치에 혼자 앉아 고개 숙이고
연못에 핀 연꽃과 7월 저녁의 넉넉한 그림자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 하나,
주위는 무언가 한없이 비어있다는 느낌,
언제부터인가 그는 눈을 감고 있다.
진한 저녁 빛깔의 사람을 만나면 불 만난 나방처럼
무작정 속이 저리는 눈뜬 사람 하나 발걸음 멈추고,
발밑에서 까치 하나가 빠른 4분의 5박자 까치발로 뛰어서
눈 감고 있는 사람 곁으로 간다.
누군가 눈을 감았다 뜬다.
모든 것이 잠시 정지해 있는 밝음 속에
그가 천천히 뒤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