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 김언
나무가 되거나 억만장자가 될 것.
조랑말이 되거나 선생님이 될 것.
그림을 그리거나 아버지를 능가할 것.
연필이라는 말 내가 꺼냈던 걸 기억하세요.
여기서부터 철이 들어야 하니까요.
아홉 살이 지나면 열 살입니다.
열아홉 살이 지나면 검은 고양이가 될 테니
전시회를 엽시다. 출품한 150점 모두
좌절의 지름길이에요. 파리로 가기 위한
기회는 언제 찾아올까요? 몇 달 동안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툴루즈
로트렉의 기이하고 평면적인 그림들을
찾아다닙니다. 둔기로 얻어맞은 듯합니다.
고작 하루밖에 걸리지 못하는 포스터들이
백 년을 견딜 거라는 생각, 그는 못했겠지만
나는 온통 푸른색으로만 세상을 봅니다.
절친한 친구가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청색은 차갑고 질병과 추위 배고픔을
체험합니다. 두꺼울수록 좋습니다. 값이 더 나가는
시대는 따로 있지만 부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청색은
스물세 살이 되어서야 파리에 정착합니다.
상상 이상의 무질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정리정돈은 어딘가 나를 위한 침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명이 살았던 빈민굴을 왜
빨래하는 배라고 불렀을까요? 세탁하는 배는
비좁고 강렬하고 불만스러워서
저항할 수 없다고 회고하는 저 여자가
발가벗고 있으니 나는 다른 침대에 있습니다.
외출할 때 신을 구두가 없으니 매일
서커스를 보러갑니다. 여성곡마사와
친한 것이 자랑스럽고 피에로와 말을 트고 지내니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헤어졌습니다. 매번 사랑한다고 했고
진심이었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누구와 헤어졌겠습니까?
아내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고맙게도
이때부터 검은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의 손재주와 눈대중이 만들어낸
조각품과 탈에서 당신은 어떤 서막을
떠올렸을까요? 몇 명의 처녀들이 완성되었습니다.
모두들 경악하고 분노하고 외면하는 만큼
잘 팔립니다. 러시아와 미국과 독일로 꾸준히
달아나는 나의 그림들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미술상이 알까요? 갤러리의 부인이 알까요?
이것은 소장가치가 높은 자존심입니다.
저것은 사기성이 농후한 진심입니다.
팔순에 도달하고도 아이 같은 눈을
팔아먹은 거장의 노후는 심심하고
끝이 보이고 이제부터 전설입니다.
잔설만 가지고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푹푹 빠집니다. 무슨 뜻인지 모른다면
기억해주십시오. 그 무렵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고 죽었다는 사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