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 조창환
고치 속에서 누에는 잠들어 있을까
꿈꾸고 있을까
혹시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마다의 고독한 집 한 채씩을 짓고
그 속에 웅크린 누에를 보면
나는 그것들이 다만 시간을 죽이고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할 순 없다
캄캄한 결박 속에서, 누에들은
제 똥구멍을 제 입으로 핥으며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어느 찬란한 봄날
배추밭을 팔랑거리는 부드럽고
연한 나비를 사랑하지만,
(누에더러 물어 봐-벌레의 목숨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 아녀!)
누에가 얼마나 쓰라린 어둠 속에서
울다가 싸우다가 지쳐 고꾸라졌는가는
모른다. 모르니까 그들은
누에가 다만 잠잔다고 말한다
잠자다 깨어 허물을 벗는다고 말한다
(누에더러 물어 봐-어떻게 자다 깨어
허물을 벗겠나? 싸우다 지쳐 쭈그러진
주름을 보여 주랴?)
가끔 꿈꾸며 잠잔 누에들은
결박 뚫지 못하고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