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에 대한 관찰 - 배용제
젖은 쓰레기 더미 위에서
치자꽃 무리가 피었다
깨진 유리병과 망가진 잡동사니 따위로
딱딱한 형태를 견뎌낸 것들,
텅 빈 공기의 틈으로 주입되는 한 호흡의
향기가 되기 위해 몰입한다
역한 핏물이 주르르 몸밖으로 흘러나갈 때까지
부패의 꿈속으로 매몰된다
그 속에서 뿌리들이 번식하는 소리
뿌리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꽃과 열매와 벌레와 여자와 아이들이 익어간다
이곳에 이르면 모든 경계는 모호해지고
날카로움도 망가짐도 눈부신 풍경이 된다
새들 속에서 우는 잡동사니와
나뭇잎 속에서 펄럭이는 고철과
꽃들 속에서 반짝이는 유리조각
온갖 황홀한 향기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물들, 사물들 모두 응고된 공기의 흔적이 아닐지
배설물이거나 발자국이거나 혹은 눈물?
가끔씩 정체를 드러내며
차갑고 날카롭게 지상을 휩쓸고 지나간다
뿌리 내린 것들은 지탱할 수 없을 때까지
몸을 부풀려 꿈 속 배경이 된다
망가질수록 황홀해지는 지상의 풍경
치자꽃 향기가 콧속으로 스민다
나는 느릿느릿 고정된 생이 형태를 망가뜨리며
수많은 사물들 사이에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