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족보 - 정병근
근친상간과 골육상쟁의 저 유서 깊은 패륜은
가령, 내셔널지오그래픽 식으로 말하자면 그게 다
무자비하면 할수록 외경스런 자연의 섭리란다
그러면서 순환하는 거라고, 인간은 그저 겸허하게 지켜보면서
뭔가를 궁구(窮究)해야 한다고 나도 가끔 테레비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자연과 생명의 경이 따위를 햐, 햐, 가르치곤 하는데
그런 아비를 심드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벌써 불신과 권태의 낌새가 묻어있다
저 눈빛이 언젠가는, 반드시, 화근이 될 것이다
음모와 반란, 살육과 숙청, 분서와 갱유로 얼룩진 아비의 역사가
저들에게 들통나는 날엔 나도 무사하지 못할 터, 설마 싶지만
(설마가 키운 방심 때문에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나는 그게 불안하여 아이들이 더 울룩불룩해지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뭔가 단단한 것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최후의 순간까지 놓지 않으리라 결심해 보는 것인데,
저 아이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아비를 추궁할 때쯤이면
어쩔 수 없이 나의 한 시절도 서서히 저물어 갈 것이다
엎드려 숙제하고 있는 아들놈의 뒤통수가 무섭다
놈은 이미 살생부 명단을 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훈을 써서 벽에다 걸어두려는데 마땅히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비이면서 가장인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 노숙(露宿)이냐 가숙(家宿)이냐가 내 운명의 핵심일 터,
일찌감치 양위(讓位)하고 수렴청정이나 할까 궁리해보다가
난데없이, 갑자 무오 기묘 을사년 들의 숱한 옥사를 생각하다가
햇빛 때문에 살인을 했노라던 한 서양 소설 주인공을 떠올리곤
그만 픽,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파트—
순장의 거대한 무덤 위로 모래 바람 분다 멸망이 코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