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이야기 - 김요일
여자가 있었네
푸른 눈동자의 여자가 있었네
가늘고 긴 휘파람을 불면
푸득푸득! 햇살을 털고 어느 사이엔가 내 곁으로 와 파도치던 여자
밀주든 독주든 그윽이 잔을 치던 여자
정성껏 비늘을 걷어내고 껍질을 벗겨
한 점 두 점 제 살을 발라 밤새도록 내게 먹이던 여자
곤이며, 애며 남김없이 제 것을 다 주던 여자
그리하여 은빛 가시와 비린 뼈만 남은 여자
해풍이 불 때면 바다를 등지고 앉아 고개를 떨구던
그 여자
누나가 되어 날 쓰다듬어 주었고
아내가 되어 양귀비꽃처럼 활짝 웃던 여자
우리 모두가 붙어먹던 여자
목타는 새벽녘엔 제 젖을 물려주던 여자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잠 재워주던 여자
잠 깨니 사라져 버렸네
별이 간 길 따라 떠나버렸네
입 안엔 아직 비린 기억이 꿈틀대는데
푸른 눈알 파먹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