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사막을 벗지 않는다 - 한길수
수천 년전의 눈발 날리던 아마르고사*
혹한에도 연명하는 풀들이 몸을 굴린다
사는 건 처음부터 목숨 건 투쟁이었을 것
모래바람 속을 떠도는 울분의 씨앗은
백 번 죽어 화려한 변명이 되고 말뿐
풀조차 神이 선택한 운명의 등고선이라면
늙은 하이에나의 울음 같은 낮은 목소리로
눈물가슴 한 골짜기를 비워두자
태양의 저주로 버림받았던 사막을 위해
간절한 기도로 창세기의 하루를 빌려오자
사막이 된 바다의 전설을 지도에서 찾는다
불황의 뼈들로 삶은 폐타이어처럼 굴러다니고
가시가 된 아홉시 뉴스가 귓속을 파고든다
끈질긴 생의 뒷골목 구차한 사랑조차
낙타에겐 단벌 멍에의 옷이 아니던가
물기 없는 저 구릉 (丘陵)의 건조한 씨알 하나가
마지막 남은 목마른 소망이 될지라도
살을 태우는 사막의 하얀 밤을 갈고 갈아
싯퍼렇게 날 세우고 싶다
*아마르고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의 산맥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