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편지 - 유용주
B급 태풍이 동지나해로 빠져나간 뒤
푸른 정맥의 잎사귀들
물마루처럼 출렁거렸습니다
방천난 내 삶의 논둑 위에
키 큰 한 그루 든든한 나무로 서 계신 당신,
사랑을 얻으면
병도 덤으로 오는 겁니까
저문 들판에 나아가
낮게 고개 숙인 강물을 바라보며
깊은 그늘의 여름과 작은 풀꽃들의 이마 위에
텅 비어 오히려 탱탱해진 가을의 침묵 속에
내 맑은 울음소리 울울울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솟아나오는 땀방울을 어찌할 수 없듯이
삐져나오는 눈물방울 막을 수가 없듯이
우리 산맥 같은 사랑 그 누가 막겠습니까
그대를 선택한 이 뚜렷한 사랑이
파탄을 향한, 상처를 향한 직통노선이라 하더라도
당신을 향한 발걸음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귀뚜라미 소리 점점 깊어갑니다
그대에게 가는 내 발자국 소리도
새벽까지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