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독한 담배처럼 타들어가고 - 박장호
기타 위에 술잔을 얹고
그 밤, 처절한 시간의 강을 건너갔지.
울림통 속에서 멜로디가 휘발된 음악이
바다를 잃어버린 모래알처럼 반짝거렸지.
조율이 안 된 현은 폐 속까지 늘어지고
현의 끝에 매달린 진공덩어리가 태양처럼 불타고 있었지.
나는 나의 위성인 듯 나의 둘레를 공전하고
나는 나만의 행성인 듯 내 스스로 자전하고.
폐 속의 행성에도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었지.
그러나 그 누구도 스쳐가지 않는 시간.
문장은 독한 담배처럼 타들어가고
벽에 부딪힌 날들이 연기처럼 기화했지.
이봐, 술이 좀 약하군.
나의 위성이 나만의 행성에게 말했지.
나는 현을 감아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환각에 들었지.
식도를 따라 흘러가는 술 속에서
기관지에 걸린 물고기가 공전 궤도에서 이탈했지.
울림통 속에 추락한 물고기는 모래에 절여져 온몸을 비틀었지.
현은 감기고 술은 더 세지고
추락한 물고기들이 울림통 속에서 죽어갔지.
나의 폐와 울림통을 이어주던 단선(斷線)
끊어진 현이 자맥질하던 그 밤,
나는 리듬만 남은 취한 음악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