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에서 날아오르는 학 - 전순영
벽에 걸린 그림 하나,
갈래머리 땋고 자운영 밭에 앉아 나물 캐는 소녀
그림 둘, 들녙에 앉아 김을 매는 소녀
그림 셋, 까만 어둠이었다
짐짝처럼 실려 온 어린 꽃봉오리
부들부들 떨면서 가슴에 보따리 하나씩 안고 팽개쳐진
까만 어둠,
한 평 천막 군용간이침대 위에 회감 처럼 누인 몸
주린 독사 때들이 번호표를 손에 들고 줄을 선
정액 걸레가 되어 독사 침을 맞고
한 잎씩 뚝뚝 떨어져 갔다
반항을 하면 채찍이 날아오고
아기를 가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가서 묻어버리는
그저 한 마리 쥐였다
캄캄한 시궁창에서 갈기갈기 찢긴 가슴을 딛고
한 걸음 씩 한 걸음씩 육십년을 걸어서
미국 하원의원 단상에 우뚝 섰다
죄 지은 자는 나와서 무릎 꿇어라
이제 우리는 그 기나긴 썩은 터널을 뚫고 학으로
날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