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華嚴) - 설태수
벚나무 잎들이 물들었다.
잎마다 붉고 노란 기운이
다르게 녹아있다. 검붉은 것도 있고
발그레 달아오른 촉촉한 잎도 있다.
주황빛과 노랑이 맞물려 있거나
노랑빛깔만 서려있는 것도 있다.
잎마다 상처난 모양도 다르다.
구멍난 자리가 크거나 작을 뿐만 아니라
찢어진 것도 있다. 한 나무 한 가지에서도
똑같이 물든 것은 없다.
똑같은 상처를 지닌 잎도 없다.
바람이 거쳐간 흔적과 빗줄기 퍼붓던 통로가
구름 그림자 스쳐간 길목과 새소리 파동이
모두모두 달라서일까.
바라보던 그대 눈빛이 시시각각 다르고
그 농도가 균일하지 못해서일까.
묘하여라, 그냥 바람에 흔들리고
빗줄기에 두들겨 맞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상처가 장엄한 화엄이 될 줄이야.
소리없이 황홀해질 줄이야.
華嚴 - 萬行, 萬德을 닦아
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