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계곡 - 이병률
폐렴을 겨우 이기고 떠난 어느 멀고 먼 길
호숫가 오두막집에 신세를 지기로 한 하룻밤
그 밤을 웅크려 다시 앓습니다
한번 호되게 앓는 동안
내 몸의 주인이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
한번 물러진 몸은 또 지치기 쉬워
종일 옆에 같이 누워 있는 것이
바깥 소리인지 희미한 점들인지 묻고도 싶었는데
나귀 몰고 장에 간 안주인 대신
바깥주인이 끓이는 닭고기스프 냄새에
금방이라도 자릴 털고 일어나
호숫가에 나가 얼굴을 씻고도 싶은데
명백해져야 하겠는데
해질 무렵 문 열리는 소리 들리고
오두막집 아이가 한아름 꺾어다 내미는 들꽃 다발에
섬뜩하리만치 뜨겁게 괜찮아지는
내 몸은 누구의 것인지
누구의 누구인지
저 바깥은 황혼이 울어대는 소리
짐승들이 길을 지우고 발 씻는 소리
내 몸의 주인인 저녁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