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제(出航祭) - 김명인
겨울의 부두에서 떠난다.
오랜 碇泊의 닻을 올리고
순풍을 비응 출항제,
부두의 창고 어둑한 그늘에 묻혀 남몰래 우는
내 목숨같던 愛人이여.
오오, 무수히 용서하라 울면서 지켜보는 時代여.
지난 봄 갈 할것없이 우리들은 성실했다.
어두운 바밀을 걸어
맨 몸으로 떠나는 날의 새벽,
눈 내리는 世界.
우리들의 航海日誌 속 뜨거운 체험으로 끼워 넣으며
불손했고 쓰라렸던 사람을 덮는다.
감동도 없이 붙들어 지킬 신념도 없이
한 때 깊이 빠져가던 우리들의 眈溺,
일상의 食卓과 우울한 밤의 비비적거림이
한갖 口舌의 불티처럼 꺼져가고 있다.
이제는 당당하게 떠나리라,
아, 실어 올린 全生涯는 제 나이 만큼 선창속에서 보채고
흰 가슴에 사나운 물빛을 켜들고
먼 바다로 달려가는 무서운 時間들.
내 意識의 깊이를 횡단해가는
알 수 없는 설레임도 들리고 있다.
차가운 눈발의 同行속에서
하얗게서려오던 幼年르 숲,
꺾어진 꽃대궁을 끌어안고
그 때 눈물로 다스리던 가슴이여.
북풍처럼 사납게 몰려와서
목숨의 한 끝을 쪼아대는 이웃의 耳目속에서 피흘리고
문득 生死의 늪에 앙상한 채 버려지던 지난 날,
마지막 한 방울의
숨어 있던 야성의 피가 깡깡 굳은 風土病을 적시고
한 世代의 사슬을 의롭게 풀어내던 것을,
질기고 칙칙한 冬眠을 몰아세우고
우리들은 깊이 잠든 食率을 몰아세우고
不眠으로 지새우며 밤새껏 航海圖를 뒤적이며
아, 버려진 모든 목소리를 새롭게 걸러내며
내 울음이 時代의 물목을 지켜서고.
우리들은 마침내 물빛 푸른 漁場을 찾아내었다.
풀려나는 긴장으로 또한번 감기는 눈꺼풀 속을
파고드는 새벽잠을 털어내고
성실한 두 팔로 기어오르는 不安을 뿌리칠 때,
우리들은 순수한 믿음의 항해 속
차고 맑은 파고처럼 떠도는 저 보이지 않는 歷史의
새로운 復活을 감시한다.
끈끈한 敵意를 안개처럼 피워올리며
難破의 갯벌을 휩쓸며 바람은
한 때 우리들이 열던 出港의 부두로 내리 몰지만
허나, 굳센 믿음의 밧줄을 이어 잡으며
목숨의 한 끝을 건져내는 강인한 힘,
우리들은 불의 힘에 온몸을 태운다.
아직도 몰아치는 눈보라 에 하염없이 쓰러지며
이마 위에 솟는 피만큼 검붉게
흉중을 휑궈내는 식솔이여,
이제는 내 돗폭의 그늘에 마저 숨어라.
신선한 믿음도 밑바닥이 보이잖게
金鱗 밝게 떠도는 물빛, 아침의
아아, 무한한 肺活量.
우리들은 태어나지 않은 역사의 새로운 孕胎속으로 떠난다.
온 핏속에 또다시 떠도는 체험의
오오, 무수히 용서하라, 울면서 지켜보는 時代여.
비로소 우리는 오랜 碇泊의 닻을 올리고
순풍을 비는 出港祭,
겨울의 부두에서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