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피정 - 신달자
엄숙하다
눈 덮인 산 입구에 들어서니
나무들이 미사포를 쓰고 있다
말문을 닫은 자들이 오르는
긴긴 묵상의 대열
나는 젤 뒷자리에 서서
말문이 아니라 목숨도 닫을 요량으로
저 세상의 소음과
단절의 각오를 투합하는
눈 덮인 바위산을 본다
여기서 내 말은 죽었지만
내 발자국은 살아 눈뜨고 있으니
여린 풀들을 키우는
내 가슴은 끓는다
어둠이 오면서
우리가 선 줄은 일제히 지워지고
지금부터다
스스로 갈길을 정하는
단호한 선택
급냉시키듯 기온 추락하는
겨울 밤의 으르렁거리는
검은 이빨 사이
나 기꺼이 凍死를 향하여
눈 산 위에 입 꽉 다문 결의를 찍으며
침묵의 재를 넘는다
등뒤에서 발자국들이
새끼 양떼처럼 줄줄이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