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독 - 이영식
풀독이 올랐다
고향집 뒤뜰 잡초를 뽑았을 뿐인데
팔뚝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
개여뀌, 환삼덩굴이 별사(別辭)를 새겨놓는 것일까
꼭. 꼭.
철필로 눌러 쓴 절명의 문자들
며칠째 불침번 서며 내 잠을 쓸어낸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나는
저 풀포기를 잡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
무허가 판잣집 쑥대밭이 되고
개밥바라기도 쭈그러져 내동댕이쳐진 밤
독이 올라, 시퍼렇게 독이 올라
악다물고 있을 때
내 손잡아 세워주던 질경이 뿌리들
팔뚝 위에 갈필로 긁고 일어선
저 날 선 복명들에게
오늘밤 나는 전복(顚覆)될 것이다
선잠 들더라도 육십년 대 시궁쥐처럼
해방촌 산등성이 비린내 곁을 기웃거리겠지
끝내, 잡초를 벗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