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 이미산
청소기의 소음에서 따르릉 따르릉
쏟아지는 수돗물에서 딩동딩동
스위치를 끄면 침묵뿐인데
누가 자꾸 나를 부르나
생각에 잠긴 빛살 좋은 오후,
처음과 끝이 만나고 있다, 소음이 고요로, 고요가 소음으로
언젠가 내 몸을 떠나간 목소리인가
수없이 발설한 호흡인가
빛으로 소리로 몸을 바꿔 돌아왔나
한 소리가 고요가 되기까지, 다시 소리가 되기까지
길고 짧은, 밝고 어두운, 무겁고 가벼운, 서로 다른 그 주기가 나를 만든다
토막 난 생선을 씻을 때
피가, 내장이, 비늘이, 몸에서 분리될 때
물소리에 집중하는 생선의 눈알, 파도에 맡겨진 몸과 분리되어 떠나가는
몸 사이에 남겨진
생각들 몰려든다 이 눈알에 갇혀
나는 오래전 어떤 행위를 기억해낸다
그곳에 두고 온 내 영상의 안부, 그리고 지금 한 몸을 분리시키는 구실의
당위성과 저 지극한 눈동자의 역설
쉼 없이 흐르는 물의 감촉에서, 지루했던 한 얼굴과 초점 잃은 눈동자 속에서
삭아가는 나를 만난다
초인종을 누르고 숨어서 지켜보는 아이의
몸속에 차오르는 초조 같은,
멀쩡한 대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