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맞이 - 이은경
숨바꼭질하는 슬픔과 기쁨
파도를 넘나드는 쓰라림과 그리움
잘 가거라 손 흔들며
꿈인 듯 생시인 듯 예까지 와서
푸른 바다 보이는 언덕에 앉아
부러워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덤덤한 내 삶
왕이다가 신하이다가
허리 굽은 시종이다가
초라한 일인다역(一人多役)일 뿐
눈부시게 세상은 멀리
놀라움과 두려움에 가슴 떨고
모진 바람 몰아칠 때마다
바람막이 되어 주는 창(窓)과 벽
고마워 잠시 잠시 눈물 젖는다
엉켜 있는 생각의 실마디 풀며
목숨의 걸쭉한 앙금 거르고 걸러
아침 햇살처럼 맑고 그윽한
말 한마디
그대에게 헌납하고자
오늘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름대로의 세월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