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배고픈 자들의 집이다 - 박영점
한 번 소멸된 것을
문득 만나 본 적이 있는가
봄이면 푸르게 돋아나는 갈대들도
계절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고
시들어 쓰러진다는 것 알고도
잎 피워 올리는
알고도 애절하도록 자라나는
가련하고 예쁜 천진한 죽음을
맞이한 적 있는지
을숙도 가장자리에 울타리처럼
바다를 둘러 서 있는 갈대들이 있다
모래톱에는 철새들의 흰 뼈들이 구르고
한천에는 새들이 아직도 날아오고
바다는 사람들 새들 밥을 지으면서
속쓰림으로 깨어 있는 배고픈 자들의 집
수많은 생들이 아직 네 속에 붙어 있다
내 가슴 속이 생이므로
그 생을 안고 찾아든 것들이
늙어 죽은 것 아닌 병든 먹잇감에
삶을 버린 흰 뼛속의 경책
티없이 맑은 날 을숙도에서 더욱 반짝이는
경책의 의미를 해독하며
철새들의 경 읽는 소리만 요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