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의 장소 - 윤명희
감국 구절초 등 들국화는
모처럼 좋은 시절을 만나
동네 곷가게 문전에 모가지가 비닐 포트에 묶인 채
오가는 행인들에게 날 사 달라고
목이 쉬어 악쓰고 있었지만
엷은 연보랏빛 가을 하늘이 그대로 묻은
쑥부쟁이는 보이지 않는다
손을 들면 잡힐 듯한 솜구름 잔잔하게 물결치는
어딘가에서 멀리 떠나가는 기적 소리가
긴긴 인생길에서 큰 실물을 한 듯 모퉁이를 돌아오고
조용히 소리 없이 북녘으로
기러기 줄지어 날으는 늦가을
더러는 노랗게 쌓인 꽃술 위에
마지막을 흐느끼며 달래고 있는 여치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서
밭두렁을 걷다가 문득 서서
장대한 줄기 모진 바람에 쓰러진 누런 풀섶 그늘에
고단한 지난 세월 그나마 부끄러운 듯
새침한 꽃잎으로
손짓하는 원야에서
해맑은 아침 햇살 같은 아우성으로
소리치며 무더기로 핀 그런 쑥부쟁이꽃이 그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