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일기 - 나정호
카메라를 들면 무언가 받아 적고 싶어진다
빈손으로 보내기에 미안했던 가을날의 나무와 새들, 이따금
내게 말 걸어주던 싱싱한 기억 속의 얼굴들, 한 번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 이파리 같은 그녀의 이름도 몰래 적어둔다
짜릿하게 찰칵 찰칵 온몸으로 받아 적으며
내게 이름 불러 주던 사랑스러운 빛줄기들, 저기 깜빡이는
눈빛들이 부시게 소스라치는 선명한 울음 한 컷도 받아 적는다
하늘가에 울먹이던 발목 삔 먹구름, 그 먹구름이
절뚝이며 걸어가다가 지우고 뭉개 버린 모퉁이들의 어스름,
별들의 눈짓도 가까이 당겨 본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몸부림해도
자꾸만 벼랑 앞이던, 그래서 두려움에 떨리던 어린 날의
촉촉한 눈망울, 그 가녀린 눈망울 너머로 그리운 아버지가
뭉개뭉개 걸어오시고 구름송이 너머로
아버지의 한 생을 받아쓰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