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 허소라
내 어제의 얼굴을 가지고 가신 당신
구천에서 퍼올리는 아픔으로
작은 불빛을 사루고
꿈도 가다가 끊어지는 먼 길
이제 빈 칼집에
우리의 남은 사랑 채우러
나는 갑니다.
어둠보다 먼저 가려고
어둠 뒤에 숨은 채
이 세상 언약 벗어던지고
짐승 같은 울음도 벗어던지고
눈빛만을 앞세울 때
비로소 전신으로 돋아나는 당신.
오늘에야 적들은 또아리를 풀고
나는 빈 마을에
적들의 이름들로 꽃씨를 뿌리며
달빛보다 먼저 가려고
남은 눈 하나로도
구만 리 먼 길을 절룩이며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