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지붕 - 정민시
그곳으로 시집을 온 후
온몸에 비가 뚫고 지나갔다
때로는 단풍이
피까지 토하며 유혹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가슴을 넘진 못했다
나이는 굵어지고
마음은 얇아지는 굴레 속에
그때 발랐던 화장색이
풍경도 깨지 않은 바람 소리에
피부와 함께 떨어져 나간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읽던
아버지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간밤엔 안방에 한 대야 쏟아 냈다
온통 진흙색이다
목수들이 요란한 망치 소리를 내고
떠나간 며칠 뒤
두껍게 껴입은 달력벽지가
몰래 얼국을 보이다
이젠 아침마다
선명하게 덧칠을 해 놓는다
밤을 넘기며
기웃거리던 보슬비 모두를 적셔 놓고
주춧돌 바닥이 입 벌린 곁에서
천둥은 온종일 통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