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 유종인
어느 캄캄한 하늘 저쪽 문밖이었을 거다
눈과 비가
서로 어깨를 걸고
대문만 남은 집 마당에 서서
지상에 내려오기로 맘먹었던 것은
눈과 비, 두 혈육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누가 먼저 떠날 수 없다는 걸 안 순간,
샴쌍둥이처럼 동시에
지상으로 헛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기꺼이 내딛는 헛발들로
그들은 천 개 만 개의 몸뚱어리로 산산이
캄캄한 허공에 줄 없는 주렴처럼
매달려 내려왔으나
그들은 서로 모른 척
한쪽 날개를 다친 두 새를 묶어놓은 듯
서로의 어깨를 걸고 이
새벽 오줌보를 줄이러 일어난 내게
창문 너머 눈보다 빠르게
비보다 좀 느리게 퇴짜 맞은 사랑처럼 울며 내려온 거다
유종인 시집"교우록"[문학과지성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