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 신혜솔
바람이 흐르고 있기 때문일거다
해가 숨어 하늘도 쓸쓸해 하는
비 개인 오후의 여름 길에서
정갈하게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녹색 터널을 지난다
빛 받아 눈이 부신 숲이 아니어도
짙푸르게 하늘을 드리운 나뭇잎들 사이로
회색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하늘과 땅이 가깝기 때문일거다
보슬비 내리던 뮌헨의 거리, 보도블럭 사이로
노란 민들레의 청초하게 웃고 있던 날도
하늘은 아름다웠다
촉촉이 젖어드는 거리의 들풀 속에서
아, 노을 없는 하늘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바람은 일찍이 가르쳐 준 적 없었는데
안개 속의 회색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던 건
더러워진 삶의 무게를 가볍게 떨구어 준
녹색 바람이 흐르기 때문이었을 거다
-<월간문학> 2005.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