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속의 두 방 - 나희덕
나를 좀 지워주렴.
거리를 향해 창문을 열고
자욱한 안개를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안개에 지워진 신호등,
안개는 창문을 넘는 순간 증발해버렸다.
안개조차 그 방에서는 길을 잃었다.
나를 좀 지워주렴.
짙은 안개를 들이키고도
사물들은 여전히 건조한 눈을 비비고 있었다.
나를 좀 채워주렴.
바다를 향해 열린 창문으로
자욱한 안개가 밀물처럼 스며들었다.
안개에 지워진 수평선,
안개는 창문을 넘는 순간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안개조차 그 방에서는 출렁거렸다.
나를 좀 채워주렴.
의자가 젖고 거울이 젖고
사물들은 어느새 안개의 일부가 되었다.
심장 속에 나란히 붙은 두 방은
서로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두 방을 오가는 것은
소리 없이 서성거리거나 출렁이는 안개뿐.
-「시향」2006.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