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읽다 - 이수익
골목시장 노점상 할머니 앞
우묵한 다라이 안은
꾸불텅꾸불텅 미꾸라지들 온몸으로 쓰는 육필(肉筆)이
선연하다.
물 맑은 어느 수로(水路)에서 미끄러지듯 길을 만들며
물 향기를 들이키던 족속이
지금은 그늘진 고무 다라이 안 얕은 수심에 갇혀
아수라로 한판 뒤엉켜
서로 먼저 대가리를 밀어넣으려고 죽기 아니면 살기!
한사코 안으로 안으로 파고든다, 부글거리는 거품을 말아올리며.
이미 할머니는 남아 있는 미꾸라지를 떨이로 팔아
오늘 하루치 장사를 막 접으려는 참인데
죽음의 예약이 임박한 줄을 모르는 저 경골어류(硬骨魚類)들은
해 그림자 떨어지는 시간의 경계 밖으로
펄떡펄떡 달아나려 한다.
할머니,
당신도 누군가의 손에서 지금
일몰의 떨이로 나와 있는지 않은가요?
이수익 시집"꽃나무 아래의 키스"[천년의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