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센 날의 풍경 - 강인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다
플라타너스는 플라터너스대로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대로
바람 속에 서서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찾으려고 떨며
지느러미를 파닥거린다
흘러가버린 저녁 구름과 매케한 소문과
매연과 뻔한 연애의 결말들은 길바닥에 차고 넘쳐
부스럭거리는, 창백한 별빛을
이제는 그리워하지 않겠노라고
때이른 낙엽을 떨군다
조바심치면 무엇하냐고
지난 겨울 싹둑싹둑 가지를 잘린 나무들은
눈을 틔우고 잎을 피워서 파닥파닥
할 말이 많은 것이다 할 말이 많아서
파닥거린다 춤을 춘다
물 건너간 것들, 지푸라기들 허공을 날아
높다란 전깃줄에 매달려 몸부림치고 소스라치는
저 검은 비닐들을
이제는 잊어야, 잊어야 한다고
빗금을 긋고 꽂히고 내리꽂히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부러져버린 진보와 개혁 그 허깨비 같은 잔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비리고 썩은 양심은 아래로 잦아들어
언제가는 뿌리 깊은 영양이 되겠지만
뭉칫돈을 거리하는 시궁 속의 검은 혀
아무에게서나 주무르는 시뻘건 후안무치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다
많아서 상처투성이의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나무들은 바람 속에서 아우성치는 것이다
창작과 비평 2007년 [여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