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 이영광
마른 아랫배가 쩍쩍 갈라지자 저수지는
물 빠진 빈 그릇이 되었다
저수지 만한 입을 가진
커다란 울음이 되었다
울음은, 풍매화 홀씨들을 공중에 날려 보내는
텅 빈 바람으로 만났다가
돌아와 꽃대궁을 흔드는 고요로 머물다가
마른 땅 밑 먼 수맥을 울린다
저 물 빠진 황야로 걸어 들어가
한나절을 파헤치던 사람들과
주둥이를 빼고 목메다 간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만지는 약손이 된다
작은 울음들이 목청껏 울고 간 먼 골자기까지가
울음의 커다란 입이다
챙챙거리는 소리들이 간신히 잠든 지층까지가
울음의 고요를 타는 입이다
나는 울음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
귀기울여본다.
큰 울음은 작은 울음들로 빽백하다
큰 울음은 오늘도 울음이 없다
이영광 시집"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