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충망 작은 틈새로 - 박연준
비가 내리고 있다
방충망 작은 틈새로
빗방울이 맺힌다
맺혔다가 주르륵 흘러내리기도 하고
한참을 머물다 마지못해 흘러내리기도 한다
비가 방충망을 파고든다
촘촘히 맺힌 눈동자들 속에
만삭의 밤이 고여 있다
자꾸만 밤이 고여 있다
자꾸만 빗소리에 매맞게 된다
내 어디를 때려줄래, 비야?
나는 속눈썹부터 꼼꼼히 젖는다
느슨하게 쳐놓은 방충망이 흔들리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몸을 던지는 비들,
아득한, 저 조그만 폭탄들
나는 뜯긴 적 없이, 봉지째로 숨어 있고
자꾸만, 비가 내린다
박연준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창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