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百日白) / 임보
목백일홍(木百日紅)은 백일 동안 붉게 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자미화(紫微花)라는 이름도 있는데 무더운 여름철 남도에 가면
홍보석 같은 꽃숭어리를 무더기로 달고 있는 그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엔 개구쟁이 친구놈들이 그놈의 몸통을 기어오르려다
자꾸만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해서 미끄럼나무라고도 했고
그놈의 밑동만 간질여도 잎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렀다
꽃이 세 번을 피면 벼가 익는다고 해서
농부들은 그놈 꽃을 겨냥해 농사를 돌보기도 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골목길을 지나다 어느 집 담장 너머로
너울거리고 있는 그놈을 보고 문득 놀랐다
그놈이 달고 있는 꽃은 붉은 것이 아니라 흰 것이었다
어찌 그리도 희한한 놈이 있단 말인가
이놈 본 얘기를 자랑삼아 어느 시인에게 했더니
그러면 그놈은 백일홍이 아니라 백일백이라고
새 이름을 달았다
그런데
어제 하남(河南)엘 갔는데
연도에 심어진 가로수들이 온통 백일백 천지였다.
무슨 한이 서려 그 붉은 꽃들이
눈서리처럼 저리도 세어졌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