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 송수권
먼 지평(地平)에 들불이 떴다.
빠른 속도로 벌판을 가로 질러 타들어 오고 있었다.
국도(國道)를 가로 질러가는 교차로(交叉路)
길을 막은 차단기(遮斷機) 앞에서
우리는 숨 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덜커덕거리며 지나가는 들불
불 켜진 창(窓)마다
툭툭 걸려 넘어진 수급(首級)들
코도 눈도 없는 해골들의 까무라치는 소리
참혹한 죽음을 태우며 다시 벌 끝을 타들어 가는 들불
그 입구 쪽에서 밤까마귀 한 마리 까옥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뒤돌아보았다.
기적(汽笛) 한 끝이 잘려 나간 밤국도(國道)에
어지러운 혼(魂)이 불티 날 듯 하고 있었다.
송수권 시집"산문에 기대어"[문학의 전당]에서